우연인지 필연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글루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할 때는 대개 주말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당장에 할 일이 눈 앞에 닥쳤을 때는 그 일 말고는 신경 쓸 사이도 없이 정신없다가, 막상 조금 시간이 나면 아무 것도 하기 싫고 허전해지고 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학기에는 이상하게도, 무언가를 써야 하는 일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그게 내 생각을 정리해서 써야 하는 일이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요약해서 써야 하는 것이든 간에 말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1주일에 5~6일은 글을 쓰고 있다. 텍스트에 매여 있지 않은 날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할일들도 다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보니까, 예전에는 시간 날 때 놀기 위해서 틈틈이 책도 읽고 했는데 요새는 다 질려버린 것 같다. 쉴 때는 책보다 영화나 영상을 보는게 더 좋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어땠던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항공과에 있을 때는 뭘 했더라? 그래도 그 때는 간간이 프로그래밍도 하고 직접 몸 쓰는 일도 좀 하면서 나름 다채로운 일들을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찾아서 읽은 다음에 정리를 하는 것들 뿐이다. 수식을 바탕으로 뭔가 문제를 풀어본 지도 굉장히 오래된 것 같고.. 분명히 배우는 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예전과는 달리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퇴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사실 애초에 가진 것도 별로 없긴 했다. 그나마 예전보다는 유일하게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제력이 훨씬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사람이 좀더 비판적이 된것 같기도 한데, 그다지 연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왜 요새 자꾸 밤마다 가벼운 술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보드카 토닉이나 진토닉이나 잭콕이나 럼콕이나.. 이런 것들을 자기 전에 좀 놀면서 한잔 딱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결정적으로 냉장고에 얼음이 안 얼려지고 술 사러 나가기도 멀고, 또 왠지 모르게 술을 사려니 양심의 가책이 온다. 하긴 어차피 일이 많아서 마실 수 있는 날은 일주일에 3일 정도 밖에 안 될텐데,양심의 가책 따위 집어치우고 그냥 내일 사버릴까.
그러고보니 텍스트 싫다고 징징 대놓고 또 텍스트를 생산해내고 있네. 내가 만들어낸 별 의미없는 텍스트들한테 미안하다.
+ <5월 20일이 된지 약 1시간 후>
도저히 연구실에서는 밤 새지 못하겠다. 어쩔 수 없이 쓰던 논문을 방에 가서 마무리 해야할 듯 싶다. LR 쓰는데 refer했던 논문들은 결국 방으로 가져가야 하는구나. 이거 은근 무거운데....ㅠ 아무 것도 들고 다니기 싫어서 일주일 정도 가방을 아예 안 가지고 다녔었는데 오늘은 드디어 가져가야겠구나.
26살이 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밤을 새도 방에서 세수 좀 하고 옷 좀 편하게 갈아입고 새는게 100만배 쯤 낫다는 걸 알게 된 것일까? 덕분에 요새는 애먼 룸메만 괴롭히고 있다. 올해 들어서 방에 들어간다 해도 10분도 못 자고 바로 씻고 나오는 일이 종종 있는데.. 아, 좀 사람답게 살고 싶다. 내 안에서 풀어야 하는 괴리들도 상당히 많은데 항상 피곤해서 도무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할만한 여유가 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좀만 여유가 생기면 항상 술이나 찾고, 공허감에 시달리고.. 나름 벽장에서 어떻게든 나오고 싶은데, 아니 적어도 문이라도 열어놓고 싶은데 그걸 행하기에는 다른데서 오는 정신적 소모가 너무 크다.
아.. 유럽 다시 가고 싶다.
- 2012/05/19 21:52
- properlife.egloos.com/2931124
- 덧글수 : 0


